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바 해전 (문단 편집) == 배경 == 당시 일본군은 [[남방작전]]을 진행하며 파죽지세로 동남아시아를 석권하는 중이었다. 2월 하순에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를 공략하면서 [[수마트라 섬]], [[발리 섬]], [[셀레베스 섬]] 등지를 침략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의 중심지는 현재의 [[인도네시아]]가 그러하듯 [[자바 섬]]이었다. 바타비아(현재의 [[자카르타]])에는 ABDA 연합군 사령부가 존재하여 동남아시아 방위전을 총괄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싱가포르 전투]]에서 10만에 가까운 병력과 장비손실이 발생한 영국군과 [[진주만 공습]]에서 태평양 방면 해군력이 일시적으로 박살난 미군은 인도네시아 방면에 대규모의 병력을 보낼 수 없었으므로 ABDA 연합군 사령부는 사실상 네덜란드군이 중심이 돼서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네덜란드는 본토를 상실한 상황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까지 잃을 수는 없기에 남은 전력을 끌어모아서 일본군을 격멸해서 방어전을 성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육군의 경우에는 숫자만 많을 뿐 장비와 훈련도, 심지어 충성도조차 떨어져서 전혀 믿을 수가 없었던 식민지 현지민으로 구성된 민병대가 숫자의 절반이 될 지경인지라 일본군이 자바 섬에 상륙할 경우 체계적인 방어전을 하기가 곤란하였다. 따라서 연합군은 일본군이 상륙하기 전에 수송선단을 격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같은 이유에서 진행된 1월의 마카사르 해협 해전(일본측 발릭파판 해전)에서는 성공적으로 다수의 수송선을 격파했으나 이미 상륙이 진행된 후라 침공을 저지하는데 실패한 전례가 있었다. 불과 10여일 전에는 ABDA 연합함대가 발리 섬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가 패퇴하기도 했다.(연합국측 바둥 해협 해전/일본측 발리 섬 해전) 때문에 연합군으로서는 어떻게든 일본군이 상륙하기 전에 수송선단을 격파해야 했다. 반면, 지난 마카사르 해협 해전의 교훈으로 수송선단의 호위를 증강한 [[일본 해군]]은 분명히 튀어나올 연합군 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눈을 밝히는 중이었다. 일본군으로서도 가장 중요한 요충지인 자바 섬 공략을 위해서 수송선단을 무사히 호송하는 것이 중요했고, 또 일본 해군으로서는 지난 발릭파판에서의 호위 실패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육군에게 신나게 까인 것]]을 어떻게든 만회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